
지난주 토요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가볍게 볼게 뭐가 있을까 하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tvN 채널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 87회 차로 "고흐"에 관한 방송분을 시청하였다. 이 방송에 사로잡혔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좋아하는 화가로 꼽듯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렸던 고흐 전시회도 다녀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화가인데 사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끈끈한 형제애 외에는 화가로서의 고흐의 삶이 어땠는지는 잘 몰랐기 때문에 이에 대해 교양프로그램을 통해 재밌게 접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채널 고정하였었다. 이 번 회차분 방송은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속 영상들을 삽입하여 더욱 실감 나고 흥미롭게 고흐의 삶을 다루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대략적인 고흐의 일대기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고흐, 영원의 문에서>라는 영화가 무척 보고 싶었다. 그래서 OTT서비스를 여기저기 찾아보니 넷플릭스에 있어서 짬짬이 감상하였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본 후기를 써 내려가려고 한다.

줄거리 |
<고흐,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는 고흐의 전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1888년~1890년 약 2년의 프랑스에서의 고흐 일생의 말기 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10년 이 넘게 가난한 무명 화가로 지내고 있던 고흐는 고단한 삶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프랑스의 한적한 도시 아를(Arles)의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의 일상도 그리고 소소한 정물들까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캔버스에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뭐든 그렸다. 하지만 그림을 너무 사랑했던 그는 외로웠다. 사실 그는 과거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그 증상이 더 악화되어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그의 든든한 지원자인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그와 같은 화가인 "폴 고갱(Paul Gauguin)"과 그의 숙소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외로워서 친구가 필요했고 또 예술을 함께 논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던 고흐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아를에서 생활하는 동안 모든 비용은 테오로부터 지원받기로 했던 고갱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둘은 성격도 너무 달랐고 미술에 대한 접근 방법도 너무 달랐다. 고흐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반면 고갱은 분석적이고 정리된 틀에서 창작을 해내는 스타일이었다. 다툼이 잦아지고 커지자 함께 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고갱이 떠나버린다. 이때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숙소의 하녀에게 자신의 귀를 담은 봉투를 고갱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고흐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귀를 자른 이유는 성경의 한 이야기를 빗대어 친구 고갱에게 사과를 하고자 한 것이고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고백한다.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던 고흐에게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후 아를 사람들은 고흐가 마을에 돌아오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고흐는 또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이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신부님과의 면담 후 나갈 수 있게 되어 프랑스 파리에 있는 테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테오는 자신의 집에서 고흐가 작품활동을 하며, 파리가 저명한 예술가들의 활동 장소인 만큼 예술공동체에도 나가서 교류하며 판매활동도 하길 원하였지만 고흐는 이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결국 1890년에 그는 테오의 노력으로 파리 근교 도시인 오베르쉬르우아즈의 한 병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 심리 치료도 받고 작품 활동을 하던 어느 날 그는 배에 동네 청소년들이 쏜 총을 맞고 앓다가 테오의 곁에서 눈을 감는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작품 수 백점들이 걸려있었고 조문객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구입도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감상후기 |
우선 빈센트 반 고흐 역 배우 윌렘 대포(Willem Dafoe)는 천상 고흐와 같은 모습이었다. 노란 배경에 귀에 붕대를 감고 의사와 면담하는 장면은 절로 자화상 속 고흐가 살아나와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그가 유명한 화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흐의 시대에 같이 살았다면 그에 대한 가치를 나도 알지 못했을 거 같다. 아를의 사람들처럼 그저 그림에 미쳐있는 괴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 고흐처럼 실제 고흐도 자신이 죽고 없는 미래에라도 작품들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라는 의지를 놓지 않았을까. 이 질문을 하게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고흐가 아를을 떠난 후 입소했던 정신병원에서 한 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했던 이야기이다. 신부님은 왜 신이 그림 그리는 능력을 주셨고 왜 끝까지 화가여야고 했는데, 고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 같아요",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절 화가로 만드신 거 같아요". 10년이 넘게 무명 화가이고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끝까지 화가로서의 의지는 놓지 않으려는 그의 꿋꿋한 마음이 절실히 느껴지는 답이었다. 영화 속 대사이지만 속으로 나는 대답했다. "미래의 사람들을 위한 화가가 되셨어요", "보통의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이세요". 영화를 보면 중간중간 고흐가 자연을 다니면서 풍경을 그리거나 거처를 옮길 때 풍경을 바라보는 고흐의 시각에서 표현되는 화면들이 신기했다. 화면이 아래 반은 흐리고 뿌옇게 보이고 위쪽 반은 생생한 모습으로 보이는데 실제 고흐의 시력이 완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불완전했던 눈감각이 고흐 특유의 작품 질감 표현 기법에 녹았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들도 있다고 한다. 고흐는 동네 아이들이 쏜 총을 맞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는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다 타살이다 분분한 의견들 중 후자를 따른 결말이다. 자살이었던 타살이었던 고흐의 죽음은 안타까웠다. 정신질환으로 평탄할 날 없었고 가난함은 더 그를 힘들게 했는데 그래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언젠가는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쉬지 않고 수백 점의 그림들을 그려냈던 그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단 1년, 2년이라도 살아서 사람들의 칭송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씁쓸함을 안은 채 영화 감상이 끝났다.
영화 외 고흐 관련 에피소드 |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어떻게 고흐 사후 그의 작품들이 더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고흐가 죽은 후 우울증을 앓았던 동생 테오도 형이 죽은 지 6개월 뒤 죽었다. 당시 테오에게는 "요한나"라는 부인이 있었고 갓난아기 자녀가 한 명이 있었는데 부인인 요한나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그녀에게는 아기와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기 위함도 있었지만 자신의 아기 이름을 "빈센트"를 따서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를 지어줄 정도로 그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았기 때문에 이를 그의 죽음과 함께 묻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요한나는 고흐와 테오 두 사람의 형제애를 스토리로 만들어내고 테오 생전 친분이 있었던 미술계 인사들을 통해 네덜란드의 큰 전시회에 고흐의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점점 고흐의 작품을 찾는 전 세계 사람들이 늘어나자 요한나는 미국에서도 전시회를 여는 등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 이에 더하여 그녀는 고흐와 테오의 서신들을 직접 번역하면서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 등 책으로 엮어내는 등 고흐를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는다. 요한나는 1925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에게 고흐의 작품들과 그 간해왔던 사업들을 넘겨주었는데, 5년 후 1930년에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는 작품들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테델레이크 미술관에 기부한다. 1973년에는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박물관"이 개관되는데 이때 노년이 된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가 참여했다고 한다. 요한나와 고흐 주니어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400점이 넘는 그의 그림들은 어디에 어떻게 있었을까. 현재의 나에게 위대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훌륭한 화가를 알 수 있게 해 준 이 두 사람과 그 뒤에 고흐의 가치를 알았던 지지자들의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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